나의 노가다 14

딴돈으로 비아그라 사먹고 떡치러 가즈아~~~

나의 노가다 14

링크맵 0 1,507 2020.03.19 16:44
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이과장이 가고 한동안 공사팀은 힘들었다.

이과장의 역할을 박과장이 도맡아 하는 바람에 박과장은 말 그대로 몸이 두쪽나도 부족할정도로 눈썹 휘날리게 일했고 바빴다.

 

하지만 박과장은 계속 공동주택만 하던터라 ACS폼이나 철골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박과장은 업무시간 후 계속 공부를 했으며 회사 지인들 찬스를 써가며 온갖 자료를 다 모아 공부했다.

 

"가뜩이나 공부하기 싫었는데 이게 날 공부시켜주네?"

 

하며 힘든 여정이지만 기쁜 맘으로 눈이 초롱초롱하게 공사계획에 매진했다.

 

ACS폼 구조를 익히고 나니 이건 자동유압상승 발판에 갱폼만 달아놓은 구조라 공동주택 십년 짬밥의 박과장은 차분히 계획도 잘 작성해가며 폼의 마감형상 및 치수에 대해 짜임새있게 협의를 진행해나갔다.

 

철골 또한 박과장에게는 좋은 기회였고 가끔씩 우리 기사급들에게도 자료를 공유하고 시간 날 때마다 공사계획을 펼치곤 설명해줬다.

 

"이게 앙카프레임인데 기초를 치기 전 앙카프레임을 올바르게 설치하는게 중요해. 설치 후에는 철골 앙카를 심어야 하는데 우리는 대형이고 고층이기 때문에 앙카는 미리 설치를 하고. 기초 타설 후에는 박스컬럼이 잘 앉혀지기 위해 레벨링을 하거든. 무수축 몰탈로 레벨링을 하기 위해서 세가지의 방법이 있어. 그 중 우리는 이걸로 할꺼고 이 때 레벨관리는 정말 중요하니 임기사 너의 역할이 크다. 임기사가 지금 하던것처럼 양 공구 다 레벨확인을 해줘야 해."

 

"업체에서 측량팀이 오지 않나요?"

 

"그래. 전체를 다 확인하기는 그렇고 우리 자체적으로도 재검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그런거야. 물론 검측때는 여기있는 니네들이 각 공구의 무수축몰탈 높이를 봐야하는거고. 임기사는 업체한테 제공해야 할 레벨을 따서 알려주고 임시 TBM을 박아놓는 것이 중요하고."

 

박과장의 차분한 설명에 우리 셋은 자연스레 선행학습 및 공부가 되었고 이 점은 이과장이랑 또다른 매력이었다.

 

박과장은 전에도 말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SKY 입학 후 자퇴하고 온갖 일을 하다가 건설회사에 안착한 케이스였다. 따라서 시공 기술사를 따기 위해선 일반적인 대학졸업+건축기사 취득 후 사년의 코스가 아니라 더 긴 경력을 필요로 했고 조만간 그 시기가 도래해서 기술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늘 이과장에게 의존해서 현장만 챙기다가 직접 마도를 차다보니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기술사  공부한다는 셈 치고 엄청 열심히 하였다.

 

나는 이과장이 있을동안 온갖 민원에 검측만 했지 효과적인 공사관리 계획 수립 및 기성사정 업무에도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였고 새로온 토목업체 이사는 사사껀껀 시비를 걸고 딴지를 걸었다.

 

"어허이! 김기사! 이러면 안되지! 우리 이번에 띠장 십단까지 걸고 이제 두단 남았는데 기성을 이렇게 주면 뭐 우리는 손가락 빨고 살게?"

 

이제 막 반년 된 내가 이십년 이바닥을 굴러먹을 사람을 어케 이길 수 있나. 난 전에 이과장이 준 기성 스타일대로 그대로 지급하는 것이라 했고 전 소장님 계실 때도 각 작업완료 비율로 기성사정을 했다고 하며 빨간펜을 들어 체크해나가자 이사는 폭발했다.

 

"아 참나! 전 소장은 전에 있던 공구장이랑 뭔 짝짜꿍이 있었는지 몰라도 원래 이렇게 하는거 아냐!"

 

뒤에서 듣고 있던 팀장님이 버럭했다.

 

"최이사님. 지금 뮈하시는겁니꺼? 원청 사무실 와서 큰소리 치고 세상 좋아졌네! 우리 담당이 기성 사정을 하는데 뭐 불만있어예? 뒤에서 들어보니 김기사 하는 말이 틀린게 없는데 뭐 자꾸 더 달라 하심까? 기성 과지급 받아서 뮈하실라꼬예?! 네?

그리고 이과장이 뭘 우쨌다구요??"

 

이사는 바로 깨갱하며 팀장님 옆으로 가 앉으며 조용조용 자기네 회사 사정이 어쩌고 저쩌고 저번 실행소장이 그 동안 모든 실행을 써버려서 경비가 남은게 하나도 없다 하며 죽는 소리를 했다. 

팀장님은 단칼에 됐고 당신네 소장 바뀌면서 지연된 공정 만회계획이나 가져오라며 보냈고 난 든든한 빽을 등에 업고 빨간펜으로 하나씩 사진과 체크해 온 현황을 참고하여 사정해갔다.

 

이 빌어먹을 최이사는 자기 사장에게 어떻게 썰을 풀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 사장이 직접 현장 사무실을 찾아왔고 이 사장은 거만하게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소장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장실에서 소장님과 면담하고 있던 사장은 잠시 후 공무팀장에게 얼굴이 붉어져서 찾아갔고 공무팀장하고 한참을 옥신각신 하더니 공사팀장에게 찾아왔다.

 

팀장님은 한심하게 쳐다보며 이의 있으시면 같이 현장 한바퀴 돕시다! 하고 나를 데리고는 같이 현장에 나갔다.

 

공정 상 B1 구간은 이미 굴착이 완료되고 집수정을 파야 하는데도 아직 못 끝냈고 B3 구간 또한 띠장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다.

 

팀장님은 말없이 사장을 끌고 현장을 다니다가 다시 사무실로 왔고 나에게 기성서류를 가져오라 했다.

 

"자 봅시데이."

 

차분하게 기성서류를 보며 지금 이공구 토공사가 어느 부위가 지연되고 있는지 그리고 기성 지급현황은 어떤지 나에게 설명해보라 했고 나는 아까 본 구역은 여기고 현재 어디까지 진행됐고 어떻게 사정이 되었는가를 설명했다.

 

다 듣고 나서는 사장은 최이사를 쳐다봤고 최이사는 아니 그래도 이게 전 소장이 어쩌구 저쩌구...

 

"고마 하이소! 얼라 장난까는거도 아이고 이리 확인시켜줬는데도 그랍니까!"

 

사장은 얼굴이 벌게져서 기성서류만 보고 있었고 최이사도 침묵했다.

 

"우리 김기사가 어련히 알아서 잘 기성 사정해줬건만 와들그라시는데예? 예?!!"

 

사장과 최이사는 알겠다고 만회대책을 가져오겠노라 하고 나갔고 사무실은 다시 평온을 찾았다.

 

박과장을 슬쩍보니 씩 웃는다.

 

내가 사정한 기성을 팀장님이 엄호하고 공무팀장 그리고 소장님 또한 나의 기성 사정을 더 신뢰한다? 우옷!!

 

나중에 들어보니 소장님은 신세한탄을 다 듣고는 아니 우리 애들이 한건데 내가 뭐라고 하면 애들 일할 맛 나겠냐. 일단 애들하고 풀어라 하고 보냈고 공무팀장님은 공사가 어련히 기성사정 잘 해서 쥤게지 뭘 이런걸로 나를 찾아오냐며 사장을 쫑크줬고 팀장님은 위에서 썼듯이 나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아니 정확하게 기성이 집행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는 앞으로 이런 일은 김기사에게 먼저 협의하라고 하며 보냈다.

 

캬.. 이게 조직이구나.

 

그 날 나는 박과장 임기사 그리고 인턴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되도않는 개똥철학을 펼치며 이게 사회고 이게 조직이조잉! 하며 엄청 즐겁게 소주를 마셨다.

 

그러나 박과장은 기성 사정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업체를 쉽게 다룰 수 있는 기본이고 페이 마스터는 노가다 뿐만 아니라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짱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기사는 이과장님이 떠나는 바람에 일찍 기성 사정권을 넘겨받았지만 혹여 그걸로 장난 칠 생각을 하면 안된다. 절대 기성을 무기 삼아서 업체를 겁박하면 언젠가는 되돌아가고 니가 기성권을 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니 말을 잘 듣게 되기 때문에 항상 명심하라 했다.

 

"그런데 과장님 팀장님은 기성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제가 사정하는걸 어케 알져?"

 

박과장은 하하 웃고는 임마 팀장님은 니가 못 볼 뿐이지 베테랑중의 베테랑이다 하며 말했다.

 

"공구장 기성 서류 검토를 팀장님께 먼저 받는데 그 때마다 날카롭게 따지시고 진행율과 집행현황 그리고 금액도 머리속에 항상 꿰고 계셔. 팀장님 현장 나가서 한번 휙 둘러보고 오는데 우리가 보는거와 다르게 많은 것을 보고 오시지."

 

아.. 그렇구나.

 

근데 나중에 내가 공사팀장 해보니 꼭 그런건 아니었고 당시 팀장님이 베테랑인 것 같았다.

 

인턴은 임기사와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임기사랑도 짝짜꿍이 맞아 조잘조잘 잘 지냈다.

근데 내가 봐도 임기사는 좋아하지만 인턴 김기사는 그런게 아니라 고참으로써 그리고 동료로서 잘 해주는 것 같아 보였다.

 

임기사가 어느날 인턴 김기사에게 저녁을 먹자고 여쭸고 인턴은 아 그래요?? 하고 알겠다고 하고는 나에게 알렸다.

 

"선배님! 임기사님이 저녁 먹재요! 엄청 맛있는 맛집이 있다는데요! 같이 가실거죠?"

 

아..

 

"음.. 글쎄.. 난 시간이 안될거 같은데..."

 

"아 그래요? 어쩌지.. 둘이 가면 좀 머쓱한데.."

 

역시 내가 본게 맞구나.

 

난 그냥 이번일을 모른척 했고 임기사가 인턴에게 몰래 데이트를 신청한 날 저녁에 안전 김대리 전기 최대리 그리고 관리 여직원까지 다섯이서 오붓?하게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임기사는 엄한 돈은 쓰고 성과가 없으니 조급해보였다.

 

나에게 연애 자문을 구했지만 나 또한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얼마 안되서 그런걸 말해 줄 상황은 아니었고 임기사는 그럴수록 더 애가 탔다.

 

말은 안했지만 인턴 김기사는 회사에서 파일럿 식으로 채용했고 준수한 학교를 나와 여기 아니고도 다른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춘것처럼 보였는데 임기사가 혹시 학력과 또 자라온 배경으로 상처받을까봐 그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것을 말한다면 자존심 쎈 임기사는 괜히 나때문에 상처받을 것 같고 해서 속으로만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턴 김기사가 나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여자친구랑 헤어지신지 얼마 안되었다면서요?"

 

"어 누가그래? 그리고 나한테 자꾸 선배님 선배님 하지 마. 나 너학교 선배도 아닌데."

 

"아 그래요? 전 왠지 이게 더 김기사님에게 친밀감있게 느껴져서... 전 헤어진지 모르고 당연 김기사님은 여자친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 됐고 너 작업일지 썼어?"

 

"아 맞다."

 

옆에 앉아서 작업일지를 쓰면서 인턴 김기사가 물었다.

 

"김기사님 내일 저랑 영화보러 갈래요?"

 

"아니. 내가 왜 너랑?"

 

"정우성하고 손예진 나오는 내머리속의 지우개가 개봉했어요! 거기 정우성이 건설일 하는걸로 나오는데 왠지 김기사님하고 비슷?"

 

"야 너 미쳤냐? 나 말고 이공구 임기사님하고 보러 가. 임기사님 영화광이야."

 

"아니 난 임기사님 말고 김기사님하고 보고 싶어요."

 

아니 이게 미쳤나. 어디서 추파를.

 

안간다고 했지만 인턴은 집요하게 보러 가자고 졸랐고 이 인턴은 무엇보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리고 둘이 영화 보러 갔다가 현장의 솔로들에게 어떤 눈초리를 받게 될지 뻔했고 이 때만해도 막연하게 여자친구가 다시 나에게 돌아올꺼야 라는 헛된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인턴은 다음 날 아침 먹을 때 오늘 영화보러 가실거죠? 라고 주제없이 말을 꺼냈고 밥을 먹던 솔로들의 귀는 쫑끗해지며 순간 밥숟가락질을 멈췄다.

 

하.. 어쩌지.

 

"그.. 영화가 모라고..?"

 

"내 머릿속의 지우개요."

 

"그래 우리 뭐 다 같이 보러갈까..? 하핫"

 

솔로들의 밥숫가락질이 다시 시작되었고 임기사는 나를 슬척 쳐다봤다.

 

아니나다를까 담배 피는데 임기사가 묻는다.

 

"영화보러 가기로 했어요?"

 

"아니요 어제 김기사가 요즘 개봉한 영화 이거 있는데 같이 보자고 해서 싫다고 했어요. 임기사님 영화광이라고 임기사님하고 같이 보러 가라고 했는데 아침에 뜬금없이 저러네요."

 

"아.. 제가 인턴 김기사에게 그 영화보러 가자고 했었는데 자기 그 영화 같이 볼 약속있다고 거절했었거든요.."

 

!!

 

아.. 이런 난처한 상황이.

 

"임기사님 난 그런거 아니니 걱정 마세요. 계속 지원할게요!"

 

임기사는 쓸쓸히 웃고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 날 나를 포함한 모든 쏠로들은 다 같이 그 영화를 보러 갔고 영화는 재밌었다.

다만 정우성이 목수반장?으로 나오는데 아직 슬라브 철근도 안깔렸는데 레미콘 스무대가 밀려있는걸 보고 저게 무슨 상황인가.. 벽체만 먼저 치는건가 하고 궁금해 하는 바람에 영화 이야기는 아직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꽤 나중에 콘크리트 강도로 인해서 VH 분리타설을 하는 것을 해외에서 처음 접했다.)

 

우리는 영화가 끝나고 맥주 한잔씩을 하고 피곤했던 나는 먼저 간다고 하고 나왔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도중 전화가 왔다.

 

인턴 김기사였다.

 

아씨 얘 자꾸 왜이러지. 일부러 안받았다.

계속 전화가 와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여보세요?"

 

"선배 어디에요?"

 

"어.. 나 집에 가고 있어."

 

"아니 그런법이 어딨어요?! 나만 버려두고."

 

"뭘 버려. 거기 괜찮은 쏠로들도 있잖아."

 

"하 참.. 정말 선배님 눈치 없으시네. 뚝"

 

눈치는 니가 없는거지. 난 아직 누굴 만나고 그럴 상황도 아니고 너는 내 타입도 아니고.

 

룰루랄라 집에 도착해서 씻고 엄마랑 얘기좀 하다가 자리에 누웠다.

 

또 전화가 온다. 아 이게 미쳤구나 지금 열두시 가까이 되가는구만.

 

"김기사 너 몇신데 전화를 하니?"

 

"야 너 나와."

 

술이 잔뜩 취해서 인턴 김기사가 말했다.

 

"나 오늘 너한테 할말 있으니 나오라고. 나 여기 어디어디거든. 너 나올때까지 기다린다. 뚝"

 

미쳤나 싶다. 임기사한테 문자를 보냈다.

 

[잘 들어가셨어요?]

 

오분 정도 지난 후 문자가 온다.

 

[네. 다들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근데 전 인턴이랑은 안될거 같네요. ㅜㅜ]

 

하 이게 무슨 일이지.

 

인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아이씨 귀찮아. 옷을 주섬주섬 입고 택시를 탔다.

 

아 택시비 아까워.

 

도착 장소를 가니 인턴 이것이 거의 꽐라된 상태로 벤치에 앉아있다.

 

미쳤어 미쳤어...

 

"너 미쳤구나. 내일 출근 어떻게 하려고 여기서 이러고 있냐. 집이 어디라고 그랬지?"

 

"인턴 김기사는 헤헤 웃으며 왔네? 라고 웃는다.

 

내가 미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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