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가다 19

딴돈으로 비아그라 사먹고 떡치러 가즈아~~~

나의 노가다 19

링크맵 0 2,325 2020.03.19 16:43
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새벽같이 눈을 떠서 십분만에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근무복 안에 얇은 패딩 하나를 추가로 껴 입고 현장으로 나섰다.

 

아빠차는 오늘 어디 가신다고 해서 큰길가로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택시가 안잡힌다.

 

시계를 보니 한시 삼십분 좀 넘은 시간.

 

두시까지 가야 하는데 발을 동동 굴리며 겨우겨우 어렵게 빈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한시 오십구분.

나이쓰. 오늘 일진이 좋아.

 

사무실로 올라가며 보니 펌프카 네대가 이미 아웃리거를 펼치고 붐대를 펴고 있었다. 

어 한대가 어디갔지.. 예비 펌프카는 저 구석에 있는데..

 

사무실에서 군장을 차고 현장으로 내려갔다.

아직 아무도 안왔고 펌프카 기사만 분주하다.

 

협력사 과장에게 전화를 하니 안받는다.

 

두시 십오분. 좀 이르긴 하네.

 

기초철근 위로 올라가서 쓱 한바퀴 둘러봤다.

가설 투광등이 환하게 켜진 기초부위는 일부 음영구간이 있어 마치 내가 오페라 무대 위에 있는 파리넬리처럼 주인공이 되었다 객석에 앉았다 하는 느낌을 주었다.

 

청소상태도 완벽하고 전 일공구 타설 때 감리가 지적했던 코어철근 비닐보양도 잘 되어있고.. SRC 기둥자리 철골 앙카도 녹색 테이프로 바지런히 붙여있다.

 

이 순간이 나도 모르게 즐겁고 상쾌하다. 현장에 아무도 없고 거대한 철근 밭 사이에서 유유히 걸어다니고 있는 나의 모습.

 

어제 박차장을 떠올리며 철근 위에서 잘 걷는 연습을 해본다.

철근이 겹치는 부위로 디딤발을 올리고 사부작 사부작.

 

그러나 쉽지 않았다. 기초 하부가 안보일만큼 철근 피치는 좁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고 걷다가 발이 빠지거나 접질리기 쉽상이다.

 

저기서 여기까지 다시한번.

 

사부작 사부작 걷는 내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진다.

이제 제법 밑에 있는 철근을 보며 걸으면 좀 자연스럽게 걸어진다.

나도 언젠간 박차장처럼 앞만 보고 걸어도 잘 걷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것 또한 요령없이 연습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십오년 이상 짬차이 나는 박차장이라면 진짜 철근위를 마라톤 코스 백번은 넘을만큼 걸었겠지.

이제 난 겨우 시작.

 

시계를 보니 두시 오십오분.

 

사무실로 가서 다시 물량 확인을 했다.

일반적인 물량 산출은 가로세로 곱하면 딱 나오지만 삐뚤삐뚤한 흙막이 벽으로 인해서 어느정도 물량이 더 들어갈지 가늠이 안되었다.

 

저번 버림 칠 때는 임기사가 도와줘서 잔량 딱 맞아 떨어지게 했지만 이거는 임기사 도움도 빌릴 수 없고..

 

나중에 현장에서 자질을 해서 물량을 구해야겠다 하고는 개략적으로 어제 뽑아놓은 물량이 맞음을 재검하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세시가 넘으니 안전팀과 관리 이대리가 출근했고 관리 이대리는 네시부터 물량 밀어넣을테니 실수없게 잘 하라고 다독이곤 영업사원들에게 전화를 하며 게이트로 내려갔다.

 

민원 업무처리를 앞장서 처리해주며 관리 이대리랑도 많이 친해졌다. 처음엔 그리 까칠할 수 없었는데.

 

다시 현장에 내려가 준비를 했다.

펌프카 한대가 안보인다. 아직도 도착 안하면 어쩌라는겨..

 

협력사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기사님 펌프카 한대가 길 중간에 퍼졌데. 일단 예비 펌프카로 세팅하고 하나 더 수배해놓을께요."

 

그러라고 하고는 동선부터 다시한번 체크했다.

 

오늘 제발 무사히 잘 끝나기를 기도하며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고 있었고 공구리패들 도착 목수 팀 일부 도착 그리고 실험실 기사도 도착해서 세팅 완료했다.

 

감리만 나오면 된다.

 

이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부장님 김기삽니다. 준비 다 끝났고 어디십니까?"

 

이부장은 현장 거의 다 왔다고 했다.

때마침 박차장도 무전으로 준비 다 됐나라고 물었고 자신있게 네! 정각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이부장이 안전모를 삐뚤게 쓰고 털래털래 내려오고 레미콘은 띄웠냐고 물었다.

 

이제 곧 도착한다 말하고 관리 이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응 이제 몰탈 들갈꺼야. 오늘 물량 계산 잘해! 저번에 임기사 두대 남겨서 욕 디지게 먹었어."

 

ㅎㄷㄷ..

 

몰탈이 들어와서 펌프카 한대씩 배관을 뚫어주고 본격적으로 콘크리트가 현장 반입되기 시작했다.

 

슬럼프 테스트를 하고 염분 공기량 측정을 했다.

 

둘다 통과. 근데 한쪽 레미콘 회사의 공기량이 아슬아슬하다.

 

뭐 조정되겠지.. 하고는 기초위로 올라갔다.

 

아까의 연습때문인지 아니면 근자감인지 철근 위에서 공구리공들을 독려하며 일공구 기초 칠 때처럼 옆에서 때론 잔소리 하며 때로는 우두커니 지켜보며 콘크리트가 바닥에서 쭉 퍼지는걸 보고 있었다.

 

작업팀에게 가까이 가서 말할 때 자바라에서 콘크리트가 떨어지며 내 옷에 좀 튀었다.

괜찮아.. 조만간 나도 임기사처럼 될 껄.

 

콘크리트는 상부근 좁은 피치를 뚫고 까까까깡 하며 자갈이 철근에 부딪히고 그렇게 기초로 자유낙하를 했다. 아직 바이브레이터는 돌리기 전.

 

다섯군데서 철근과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고 리드미컬하게 오늘 나의 성공적인 기초 타설을 축하하는 듯 했다.

 

근데 그 소리가 갑자기 줄어들더니 두대가 멈춰있다.

 

뭐지?

 

다급히 펌프카 앞으로 가니 감리 이부장은 실험실 현채 기사한테 뭐라고 하고 있다.

 

뭐지... 하고 봤는데 공기량이 안맞단다.

현채기사는 레미콘 품질직원에게 어서 배처플랜트 연락해서 조절하라고 얘기했고 모두가 바빠졌다.

 

공기량? 그게 뭐가 중요해서 저리 난리지?

 

두개의 레미콘 회사 중 한개의 회사 레미콘만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그렇다고 섞어칠 수도 없었다.

 

기초 조닝별 회사를 구분하고 추후 수화열 관리 및 품질 관리에 구분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 기초칠때 보니까 걍 막 흐르던데 그걸 구분해야 하나..

 

회차되는 레미콘 댓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섯대.. 여섯대.. 일곱대...

 

박차장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고 조금 이따가 관리 이대리가 헐레벌떡 영업사원과 함께 내려왔다.

 

관리 이대리는 자초지종을 듣더니 영업사원에게 야이 미친새끼 우리 현장 말아먹을 일 있어! 빨리 조치하고 품질실장 들어오라고 그래!! 라고 소리쳤고 영업 사원들의 전화기는 바빠졌다.

 

어... 하늘이 조금씩 밝아온다.

 

공기량이 한번 빵꾸나기 시작하면 잡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미 출하된 레미콘은 총 서른여섯대.. 그 중 여섯대는 치고 나갔고 회차는 아홉대에 저 위 램프에 있는 레미콘부터 현장 도로 앞 대기하는 레미콘까지 하면 서른대다.

 

레미콘 업체 품질실 직원은 부리나케 레미콘으로 달려가 다시 배처 플랜트로 가라고 지시했고 유도조는 경광봉을 반짝이며 차량 유도를 했다.

 

이부장은 참 노련했다. 나중 골조공사하면서 본 이부장은 꼭 가려운데만 골라서 침을 놨고 그것 때문에 난 참 고생도 많이 했었다.

 

관리 이대리가 캔커피 한잔 내밀며 레미콘 곧 올때까지 시간이 걸리니 차안에 들어가서 쉬라고 했는데 이부장은 아냐 됐어 나 따뜻하게 입고와서 괜찮아 하며 캔커피를 호호록 마셨다.

 

아... 지금 시간이면 육백루베를 쳤어야 하는데 어쩌지.. 그 절반밖에 안됐네.

 

다른 레미콘 회사 품질 직원들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같이 도와가며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기네 품질실험을 하고 확인받고 레미콘을 펌프카 똥주바리에 댔다.

 

천국과 지옥이었을거라.. 같은 입장임에도 공기량 하나로 인해서 두 회사는 극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김기사 송신!"

 

박차장이었다.

 

"네 송신하십쇼!"

 

"품질실장이랑 관리팀장님 내려가니 거기는 놔두고 넌 기초 타설하는거 잘 봐라."

 

알겠습니다 외치고는 다시 가설계단을 통해 기초위로 올라갔다.

 

공구리패 두팀은 나를 보며 아니 어떻게 된거냐고 역정을 낸다.

 

품질문제가 있어서 회차된다 했더니 저 많은 레미콘을?? 하며 자기들끼리 저게 얼마인지 돈 계산을 했다. 맞는지 안맞는지는 모르지만.

 

아침이 되고 임기사가 내려왔다.

 

임기사는 아침밥을 먹고 오라고 하며 토스하잔다. 현재 진행상황을 알려주며 계획대비 약 사십프로 정도 타설이 진행됐고 큰일이라고 했다.

 

때마침 아침을 같이 먹으려 인턴 김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쫄래쫄래 게이트를 나가 출근차량들로 꽉 막힌 횡단보도를 지나 아침을 먹으러 갔다.

 

"선배님 이거 보세요!"

 

인턴이 공구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줌을 입빠이 땡겨찍은 내 모습이다.

 

하얀 모자에 옷을 두껍게 입고 기초철근 위를 돌아다니는 모습이었고 인턴 김기사에게 이런건 왜 찍었냐. 누가보면 부끄러우니 지워라 했다.

 

"왜요 좋잖아요. 나중 추억이 되기도 하고. 김기사 첫 기초타설 이런 제목으로 두면 뭐 십년 후에 회상할 수도 있고."

 

하긴 우리는 사진을 참 안찍었다. 지금에야 스마트폰의 발달로 허세샷도 찍고 기록도 많이 남기지만 아직 애니콜이 유행하던 당시는 휴대폰의 카메라 화질도 구렸을 뿐만 아니라 공구별로 지급되는 카메라도 애지중지 아꼈다.

그놈의 잔고장 많이나는 올림푸스.

 

밥을 먹고 두런두런 아침 기초 타설 얘기를 해줬고 공기량이 안나와서 회차 당했다고 지금 좀 지연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인턴 김기사는 끄덕끄덕 내 눈을 맞추며 추임새를 넣어가며 잘 들었다. 너는 카운셀링이나 하지 왜 노가다를.

 

내 말에 집중하는 인턴 김기사가 참 이뻐보였고 오늘따라 마치 애인처럼 데이트 하는 기분이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기초로 가서 상황을 봤다.

 

레미콘 회사에서 공기량을 맞추기 시작했고 타설은 힘차게 진행됐다.

 

하지만 초기에 물량 뽑을 시간을 놓친지라 아쉽다.

출근정체는 풀렸지만 레미콘이 쌩쌩 달리는 새벽길만 하겠는가.

 

바이브레이터가 지이이이잉 돌아가기 시작했고 제법 하부근도 가렸다.

 

어찌보면 의도적으로 타설반장에게 다가가 물어보고 하면서 콘크리트가 몸에 묻기 시작했고 이게 마치 자랑스런 훈장마냥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 되면 열심히 일 한 티는 나겠지.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레미콘은 계속 들어왔고 나도 공구리패와 함께 빵으로 떼웠다.

 

슬슬 물량 계산할 때가 됐다.

 

자질을 하니 이제 절반정도가 덮인 듯 하다.

 

양쪽에 있는 합벽으로 다가가 H 빔 어미널말뚝과 기초 철근 사이의 길이를 재며 나름 짱구를 굴리며 계산해갔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흘러 저녁시간이 되었다.

 

임기사와 잠깐 교대를 하고 부리나케 저녁을 먹으러 갔다.

 

다들 저녁을 이미 먹었는지라 혼자고 된장찌개를 해달라 했다.

 

"아유 김기사 옷이 그게 뭐야.. 뭐가 잔뜩 뭍었네."

 

식당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한마디 하셨고 나는 오늘 공구리 치느라구요 하며 벽에 걸린 거울을 봤다.

 

어라 얼굴에도 이리저리 공구리가 튀어 뭍어있다. 오케이. 이정도면 됐다.

 

서둘러 밥을 먹고 다시 현장으로 가 기초치는걸 봤다.

 

퇴근정체가 좀 길어지더니 원래는 일곱시 쯤 마무리를 하고 종료가 되어야 하는 일이 계속 길어진다.

 

난 정신없이 자질해가며 잔여물량을 산출하고 있었고 이대리는 끊임없이 물량을 확인했다.

 

"김기사 몇대 남았다고?"

 

"예.. 잠시만요... XX 스물세대 YY 스물한대입니다."

 

"아까 말했지만 물량계산 잘 해라..."

 

아씨.. 감이 잘 안오고 머리속은 하얘져만 간다.

공구리패들에게 물어보니 아휴 이게 무슨 스물한대여 열여덞대면 충분하겠네 한다.

 

다시 무전기를 잡았다.

 

"이대리님 송신하십쇼."

 

"어 송신."

 

"아까 말한 YY회사 물량은 열 여덞대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다."

 

한쪽에서는 기초 상부근 표면을 콘크리트가 덮어가고 있었고 타설팀은 인원을 나눠 표면정리와 타설로 구분되었고 표면정리 팀은 시야게를 하며 기레빠시 철근을 수직으로 세워 마킹한 레벨을 확인 후 쑥 빼서 기초 안으로 밀어넣었다.

 

아...

 

시간은 가고 내 맘도 조급해진다.

 

임기사도 옆에 다가와 물량계산을 도왔다.

 

"김기사님 저거 더 들어갈거 같은데..?"

 

아까 공구리패들이 말한 물량 구간은 쭉 쭉 계속 콘크리트가 채워지고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더 들어갈 것 같다.

 

공구리패들에게 가서 반장님 여기 더 들어갈거 같네요! 아까 열 여덞대면 충분하다며요! 라고 하니 아니 그정도면 된다고 정 불안하면 한대만 더 띄울고 했다.

 

에이씨.

 

이대리에게 무전으로 두대를 더 띄운다.

 

"얌마 너 물량 똑바로 안봐? 레미콘 한대가 얼만지 알어? 이거 마지막이지? 더 이상 변경 없이 물차 띄운다!"

 

하... 아 씨..

 

머리속이 다시 하얘진다.

 

맞다고 하고는 마지막 물량 잡을 곳으로 갔다.

공구리패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었고 이거 물량 아까 말해준게 맞다고 몇대 더 띄웠냐고 물어봤다.

 

"두대요.."

 

"잉!? 이거 남을껀디!"

 

추가로 띄운물량 빼고 이제 일곱대 남았다.

합벽쪽이 다 채워지며 빠르게 콘크리트 레벨은 차오르고 있었고 으잉 이게 뭐야...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속도는 빨랐다.

 

펌프카 네대는 이미 물차가 도착해서 위잉 철컥 철컥 하며 배관 청소를 하고 있었고 나는 조급해졌다.

 

자바라 바로 앞까지 가서 공구리 튀는건 둘째치고 물량을 맞추고 싶었다.

 

어라..

 

두대 추가로 띄운거 빼고 세대 남았는데 이미 표면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으... 이럴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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